미니스터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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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보일까요?

2020-03-13

우리 교회에 한인들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우리의 교회의 모습을 본래 교회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비추어 보고자 합니다. 에베소서에 주님의 교회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한가지가 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써 사람들 사이에 벽을 허물고 한 사람 즉 교회를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즉 교회에는 벽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어떤 벽들을 허무셨는지 몇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종교적 전통의 벽
예수님은 사람들 사이의 종교적 전통의 벽을 허무셨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사마리아에 있는 한 산에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요한복음4:20).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전통을 주장하면서 서로 적대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배의 장소에 관계없이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원하심을 천명하셨습니다 (4:23-24). 예수님은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 있던 종교적 전통의 벽을 허무셨습니다. 나중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한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구원을 가로막는 벽
예수님은 또한 사람들 사이에 있던 구원을 가로막는 벽을 허무셨습니다. 어느 날 로마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중풍으로 쓰러진 자기 종을 도와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마태복음8장). 예수님이 그를 따라 나서려 할 때, 백부장은 말씀만 하시면 하인이 나을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방인인 그의 믿음에 놀라시며,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는 그렇지 못할 자들이 많이 있는 반면, 이방인 중에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자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자신들만 믿음 안에 있다고 자만하면서 구원에 관하여 이방인들을 멸시하고 구원이 자신들의 전유물인 양 자만을 부렸습니다. 그들이 세운 구원을 가로막는 그 벽은 예수님께서 죽음으로 허물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의 죽으심을 통해 만인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인종과 민족에 관계없이 모든 믿는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활짝 여셨습니다.

특권의 벽
예수님께서 무너뜨리신 벽들 중 하나가 사람들 사이에 있던 특권의 벽이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이를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10장). 비유에는 특권을 가진 레위인과 제사장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특권의식에 빠져 행한 행동을 꾸짖습니다. 역설적으로, 예수님께서 칭찬을 한 사람은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던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그의 사랑의 정신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칭찬하시기를 심지어 제자들에게 그가 했던 것과 같이 하라고 명령할 정도였습니다 (10:37). 예수님은 그렇게 사랑의 정신으로 사람들이 정한 특권의 벽을 허무셨습니다. 그리고 후에 그 정신으로 돌아가심으로써, 모든 인간의 특권을 그 발 아래에 내려가게 하셨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무너뜨리신 벽의 몇가지 예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종교적 전통의 벽, 믿음에 대한 벽, 그리고 특권의 벽을 허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벽들이 있는 것은 주님의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도 또한 주님의 교회이기에, 그런 벽들을 허물고 믿음과 사랑 그리고 신령과 진정의 예배로 하나가 된 모습이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모습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그 모습이 우리로 하여금 한국인이건 미국인이건 자신있게 우리 교회로 초대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믿습니다.


핍박을 뚫고 성장하는 우리

2020-03-08

오늘 데이빗 김 형제님, 주드 형제님 부부, 그리고 안호상 형제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이 있어서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참으로 우리에게 힘을 줄 뿐 아니라 우리의 사명을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말씀들이었습니다.

교제가 끝나갈 무렵에 잠깐 듣게 되었는데, 이분들이 우리 교회에 나오시는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를 다시 생각케 했습니다. 이분들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대해 말하면 바로 “이단이다”라고 충고 아닌 충고, 경고 아닌 경고를 한답니다. 물론 저는 그런 말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들어와서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닙니다만, 이분들에게는 적지 않이 부담을 주는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따라서, 그런 주위의 억측에도 불구하고, 이분들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분들이 우리 교회에서 정말 무언가 중요한 것을 보셨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안호상 형제님은 우리 교회가 “성경 전체를 가르치고 그대로 행하려고 하기 때문에”라고 그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데이빗 김과 주드 형제 부부는 그 이유를 말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각자 비슷한 이유가 있음에 틀림 없습니다.

저희가 지난 14년 동안 주님의 교회의 멤버로서 한인은 물론 누구에게라도 전도를 하면서 느낀 것은 성경적인 우리 교회를 부주의하게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사람들은 많고, 우리와 함께 하려고 하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성경이 가르치는 주님의 교회에 대해서 모르고,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잘 모르거나 왜곡되게 알고 있기 때문인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우리가 처한 엄연한 현실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함께 하려고 나아오는 분들이 얼마나 귀합니까?

지금 우리 교회에 한인 멤버들의 수와 비지터 들의 수가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비지터의 수가 훨씬 더 많아질 것입니다. 이럴 때에 멤버로서 역할의 중요성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비지터들은 미국인 성도들도 보겠지만, 언어와 문화의 차이 때문에 쉽게 속속들이 알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한인 멤버들을 통해 우리 교회의 진면모를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즉, 우리 한인 멤버들의 모습이 한인 비지터들에게 우리 교회의 모습을 대표하는 것이 되고, 나아가서 그분들이 우리와 계속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물론 사람을 보고 그 교회를 택하겠느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만, 우리들의 부족함 때문에 실망해서 혹은 상처받아서 어떤 사람이 주님의 교회를 더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떠난다면, 그것이 주님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누가 아니라고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지금까지 많은 어려움도 이겨내셨고, 많은 수고도 하셨습니다. 이제는 그 동안의 힘든 과정의 열매를 맺고 수확을 할 때입니다. 한여름 땡볓을 무릅쓰고 힘겹게 농사를 지은 후 마지막 추수를 잘 못하는 것 같이 억울하고 어리석은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땀의 결실을 하나님의 창고에 들여서 그분들과 함께 새로운 가족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더욱 심기일전합시다. 무지하고 부주의한 사람들이 자기 입으로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고 “주님의 교회”를 이단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그 한마디 한마디에 대해 심판하실 것이니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도록 우리 각자 자신의 크리스챤으로의 면모를 살피는 것은 우리들에게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영광스러운 직분임을 다시 한번 다 함께 마음 깊이 새기기를 바랍니다.